장캔디
2008. 1. 5. 15:34
"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. 그때 안 했어도 저는 방송을 했을 거 같아요. 운명적인 것을 믿어요. 제가 고민을 많이 하지만, 이를 이겨내는 신약(神藥)은 '운명론' 같아요. 잘되는 일이 있으면 이는 반드시 정해져 있는 거,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뭐 어차피 정해져 있는 거라는 식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합니다.
http://news.media.daum.net/society/others/200801/05/chosun/v19500254.html
more.. less.. <p>방송사 간부 후배에게 '압력'을 넣고, 그 후배는 강호동(38)에게 빌고 빌어, 넉 달 만에 성사된 인터뷰였다. 그러자 강호동은 "우하하하, 선생님"이라며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. <br />
<br />
"정 그렇다면 하긴 하겠는데, 나 같은 사람을 신문에서 크게 내도 됩니까"라고. 그는 아직 만나지도 않은 나를 먼저 웃기려고 하는 것이었다. 요즘 대통령을 인터뷰하기보다 더 어려운 게 스타 연예인이라고 한다. <br />
<br />
그를 일식집에서 만났을 때, 이 점부터 따졌다. <!-- 사진 Start --><table style="clear: both" align="center"><tbody><tr><td style="padding-bottom: 10px"><table width="480"><tbody><tr><td class="d_11_000000"><img alt="" src="http://photo-media.hanmail.net/200801/05/chosun/20080105130903.158.0.jpg" width="480" border="0"/><br />
<br style="line-height: 1px"/>지난 연말‘SBS 연예대상’을 받은 강호동씨가 광화문 한복판에 섰다. 방송 3사를 종횡무진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, 그는“내 전성기는 앞날에 있다”고 했다. /허영한 기자 younghan@chosun.com<br />
</td></tr><tr><td height="2"></td></tr></tbody></table><table width="480"><tbody><tr><td class="d_11_000000"><img alt="" src="http://photo-media.hanmail.net/200801/05/chosun/20080105130903.158.1.jpg" width="480" border="0"/><br />
<br style="line-height: 1px"/>허영한 기자 younghan@chosun.com<br />
</td></tr><tr><td height="2"></td></tr></tbody></table></td></tr></tbody></table><!-- 사진 End --><br />
<br />
―"나 같은 사람이 신문에 나와도 됩니까"라고 겸사를 떨었는데, 가식적인 쇼인가요? 진심인가요?<br />
<br />
씨름 천하장사 출신에서 이제 최고 인기를 누리는 방송 진행자가 된 그는 눈길만 마주쳐도 "우하하하" 터뜨리던 웃음을 딱 멈추었다. <br />
<br />
"제가 인터뷰를 잘 안 하는데요, 선생님(이 단어는 그의 습관적 말투임). 왜냐하면 공개적으로 내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두렵고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. 방송에서는 촌놈 이미지인데, 내가 고급스럽게 나가는 것도 맞지 않고,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. 이게 겸손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. 또 누굴 만나도, 재미있어야 한다, 웃겨야 한다,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직업적 강박관념이 있습니다. 누구든 5000만 명(국민) 모두가 고객이니까 부담스럽지요. 방송 진행은 어떻게 하느냐고요? 그건 PD, 작가, 출연자 등 아군(我軍)끼리거든요. 제가 실수를 해도 잘 편집해주니, 편안한 입장인 거죠." <br />
<br />
―기자는 아군이 아니라는 거죠?<br />
<br />
"그게 아니라…, 독자들이 돈 내고 신문을 사보면서 내 생각을 읽고 싶을까요. 내 신념이라는 게 존경받을 만한 것도 없고. 제 생각은 늘 바뀌어왔거든요. '이게 맞다'고 생각을 했는데, 세월 지나면 저게 또 맞는 거 같아요. 글쎄, 저처럼 귀가 얇은 사람을 세상에 처음 봤습니다. 얼마 전 대선 토론 프로를 볼 때도, A의 얘기를 들으면 B가 나쁜 사람이에요. 그런데 B가 반박하는 걸 들으면, 그게 또 맞아요. 그런 내가 무슨 생각을 이야기한다는 게 굉장히 신경 쓰이는 거죠." <br />
<br />
</p><br />
―그럼에도 본인이 최고의 자리에 와있다는 것은 느끼고 있겠지요?<br />
<br />
"열아홉 살에 천하장사가 됐을 때, 내 인생에서 사십 대가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. 씨름이 10년, 방송이 15년이니 이제 배보다 배꼽이 훨씬 커져 버렸어요. 그런데 씨름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샅바 잡고 한두 달 정도 하다보면 옛날 가락이 나와요. 전성기 때보다 체력은 안 돼도, 후배들보다 보는 눈이 훨씬 높습니다. 그런데 방송에서는 아직 기초가 안 돼 있다는 거예요."<br />
<br />
―방송 생활 15년이면 기초를 운운할 단계는 지나지 않았습니까?<br />
<br />
"가령 이경규 선배님이나 유재석, 신동엽 씨 등은 어렸을 때부터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했지 않습니까. 학교도 그런 학교를 나왔고. 그 사람들은 타고난 기본 재능 아래 스스로 기획을 할 줄 알아요. 이들에게 '다음에 하고 싶은 작품이 뭐냐?'고 물으면, 벌써 구상하고 있을 겁니다. 나는 그게 안돼요. 씨름에서도 시작이 굉장히 중요합니다. 고등학교 때 씨름을 시작했다면,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웬만한 상위권의 선수들을 절대로 못 따라갑니다. 기초가 안 돼 있는 것, 결국 이게 제 한계가 아닌가. 그 사람들보다 더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. 내 머리가 나빠서 그렇다면 받아들이겠지만."<br />
<br />
―학교서 배웠다고 해봐야, 불과 2~4년 차이 아닌가요? <br />
<br />
"배움의 혜택을 못 받은 자격지심인지 모르겠지만. 해본 사람은 그렇게 말할지 모르나, 남들처럼 안 해본 사람에게는 늘 콤플렉스가 되는 거죠. 그래서 배울 게 없어 대학을 안 간다는 식으로 누가 말하면, 내게는 참 비겁한 변명처럼 들립니다. " <br />
<br />
천하장사 5번, 백두장사 7번을 차지한 그는 22세의 한창 나이에 씨름판을 은퇴했다. 학력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고 한다. "천하장사를 하는 동안 <a class="gu_15_0b0bcd" href="http://search.daum.net/cgi-bin/nsp/search.cgi?w=tot&q=%C0%CC%B8%B8%B1%E2&nil_profile=newskwd&nil_id=v19500254" target="new"><font color="#0b0bcd">이만기</font></a> 형님이 은퇴해 대학 강단에 섰습니다. 그걸 보면서, 실기(實技)로는 A+이지만 지식 없이 살아온 내 삶이 자꾸 걸렸죠. 이론을 겸비하려면 대학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. " 그는 '체육특기생'으로 진학하려고 했다. 하지만 특기생 혜택은 '졸업 후 3년 내', 이미 그 기간이 지난 뒤였다. <br />
<br />
―현장에서 배우는 것 자체가 기초지, 꼭 학교에서 배워야 기초가 되는 건가요?<br />
<br />
"씨름으로 보면 강호동은 굉장히 타고난 조건입니다. 당시 키 182cm, 몸무게 125kg, 아주 탄력 있고 허리가 좋았거든요.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을 훈련해야 하는 지 확실히 알고 있었지요. 하지만 방송에 와서는 방법을 모르겠어요. <br />
<br />
대본을 받아 들고, 하얀색 대본이 검은색 대본이 될 때까지 볼펜으로 줄 치면서 외웠습니다. 학교에 다닐 때도 안 해본 짓을 처음 한 것이지요. 눈앞에 깜깜한 벽이 서있는 것 같았습니다. 정말 고민 많이 했지요. 그런 고민이 결코 나쁘게만 작용한 것은 아닙니다. 저를 자만이나 방심에 빠지지 않게 만들었지요. 제 확실한 철학이 있다면 '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'가 아니라, '젊은이여 고민을 가져라'는 겁니다. 고민하고 밤새도록 더 고민하라고요."<br />
<br />
찻잔을 꿀꺽 비운 그는 슬그머니 방송 진행자로 돌아와 "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?"라며 질문을 하는 것이다. <br />
<br />
"'천재는 노력하는 자에게 못 이기고,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에게 못 이긴다'라는 참 좋은 말이 있는데, 저는 그 말을 안 믿었거든요. 노력하는 자보다 즐기는 자가 결국 최상위가 된다는 거죠. 한 분야에서 1등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즐기고 있는 걸까요? 선생님은 즐기는 인생이라고 생각하세요? 인터뷰 일을 즐깁니까?"<br />
<br />
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, "대답을 하세요. 답을 해야 인터뷰가 진행됩니다"라고 덤볐다. 결국 "힘들어 죽겠다"고 하자, 그는 "봐요, 선생님도 그렇잖아요"라며 깔깔거렸다. <br />
<br />
"즐기면서 능력을 발휘한다? 1년 365일 내내 어떻게 즐깁니까? 그건 정말 1%의 천재들 이야기이지요. 저는 서른 다섯 살까지 결코 그걸 못 믿었어요. 하지만 요즘에는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인지 '어쩌면 즐기는 자가 이길 수도 있겠구나'라는 생각이 가끔 들 때도 있지만요."<br />
<br />
―배운 것 없이 씨름판에서 살았는데, 어떻게 해서 방송에서 성공했지요? 그건 타고난 겁니까, 노력한 결과입니까?<br />
<br />
"과거에는 노력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 '특기'였지요. 요즘은 그건 특기 사항이 아닙니다. 일상에서 숨 쉬는 것처럼, 누구나 다 하는 '기본'입니다. 안 그렇습니까. 그런데 제가 정말 성공한 겁니까? 정말 그렇다면, 이는 내가 모르는 내 능력을 끄집어내 준 선배와 PD들이 있었던 것이죠. 나는 내 속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. 이분들은 뛰어난 감각으로 그걸 미리 봤던 겁니다. "<br />
<br />
씨름판에서 은퇴한 그가 대학 진학에도 막힌 뒤, 후배들에게 씨름을 가르쳐주며 쉴 때였다. 코미디언 이경규가 그를 불렀다. 그전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잠깐 마주쳤던 인연이 있었다. 이경규는 방송 데뷔를 권하면서 "만약 실패하면 나도 같이 옷을 벗겠다"고 했다. 그런 뒤 "저 친구의 다듬어지지 않은 면을 닦고 보면 빛이 날 텐데"라며 담당 PD에게 소개했다고 한다. <br />
<br />
"그렇게 해서 '소나기'라는 프로에 출연했던 겁니다. 못 배워 좋은 점은 '똥고집'이 없는 거죠. 제 의견이 없어요. 배우지 못한 자로서의 혜택인 거 같아요. 백지(白紙)를 내보이죠. '알아서 잘 칠해 주십시오'라고, 완전히 저 자신을 맡겨버립니다. 다른 진행자들은 얼마간 자기 고집과 색깔이 있으니, 완전 백지가 되기 어렵습니다. "<br />
<br />
<br />
<br />
―당시 방송 데뷔를 안 했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? <br />
<br />
"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. 그때 안 했어도 저는 방송을 했을 거 같아요. 운명적인 것을 믿어요. 제가 고민을 많이 하지만, 이를 이겨내는 신약(神藥)은 '운명론' 같아요. 잘되는 일이 있으면 이는 반드시 정해져 있는 거,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뭐 어차피 정해져 있는 거라는 식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합니다. 그런 게 나한테 왜 필요했느냐면…." <p>그는 불쑥 양다리를 들어 올려 바지를 걷었다. 왼쪽 정강이에 있는 지렁이 같은 흉터를 가리켰다. "120바늘 꿰맸습니다. 양쪽 다리 길이와 근육이 다르지요. 왼쪽 발목은 잘 움직이지도 않습니다"라고 했다. <br />
<br />
"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고 나면서 운명이라는 걸 믿게 됐어요. 고3 때 '전국통일장사'를 따 대학과 프로씨름단으로부터 <a class="gu_15_0b0bcd" href="http://search.daum.net/cgi-bin/nsp/search.cgi?w=tot&q=%BD%BA%C4%AB%BF%EC%C6%AE+%C1%A6%C0%C7&nil_profile=newskwd&nil_id=v19500254" target="new"><font color="#0b0bcd">스카우트 제의</font></a>가 쇄도했습니다. 즐거운 비명을 막 지르고 있을 때, 오토바이를 타다 치명적인 사고가 났어요. 다리가 거의 끊어질 뻔했거든요. 내 인생이 끝난 줄 알았어요. 그때 비로소 철이 들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. 섬세해졌고…."<br />
<br />
"발목 관절이 잘 움직이지 않는 이 다리로 나중에 천하장사를 했다"는 말을 할 때는, 그의 눈자위가 어둑해졌다. <br />
<br />
―방송에 뛰어들어서는 최악의 순간이 언제였지요? <br />
<br />
"초반에는 나한테 안 어울리는 옷을 억지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 많았습니다. 씨름을 하면서 그런 걸 다 경험했기 때문에…. 결국 방송은 씨름과 똑같습니다. "<br />
<br />
―어떤 상관관계가 있죠?<br />
<br />
"하나도 안 틀리고 똑같습니다. 씨름에서 가장 괴로운 때가 동계 훈련입니다. 그 고통은 달리 말로 표현이 안 됩니다. 씨름 시즌은 3월부터 10월까지인데, 동계 훈련의 효과는 3월에 즉각 나타나지 않습니다. 8월, 9월쯤 가야 효과가 나타납니다. 그 효과란 끝까지 버티는 정신력입니다. 방송 진행도 체력전입니다. 몇 시간씩 녹화 방송을 제작하기 때문에 지치면 안 됩니다. 내가 지치면 출연자가 지치고 출연자가 지치면 프로그램 진행이 안 됩니다. 씨름은 체력전, 방송 진행은 심리전으로 생각하기 쉽지만, 사실 방송 진행에 더 체력이 필요하지요. 하루 중 쉬는 시간이면 거의 체육관에서 삽니다. "<br />
<br />
―'<a class="gu_15_0b0bcd" href="http://search.daum.net/cgi-bin/nsp/search.cgi?w=tot&q=%B9%AB%B8%AD%C6%C5+%B5%B5%BB%E7&nil_profile=newskwd&nil_id=v19500254" target="new"><font color="#0b0bcd">무릎팍 도사</font></a>'가 출연자에게 '막가파' 식 질문을 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데. <br />
<br />
"결코 '막가파' 식은 아닙니다. 제가 볼 때는 질서가 있습니다. 공과 사는 반드시 구분합니다. 공인(公人)이다 보면 안 좋은 일도 있을 수 있는데, 그게 사적인 부분이라면 궁금해도 억제를 합니다. 공적인 부분이라면 그 사람 이미지에 좋지 않더라도 질문할 수 있는 거죠. 저로서는 놀라운 거 재미난 거 신나는 거를 끄집어내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, 한편으로는 보호해야 된다는 생각도 동시에 있지요."<br />
<br />
―그런 질문을 하겠습니다. 얼마 전까지 연예계 스캔들의 상대역으로 종종 등장했지요.<br />
<br />
"그런 소설이 재미있습니까. 씨름 선수 출신이니까 힘세고 정력 좋은 걸로만 연상이 되니…. 그냥 그런 줄 알고 넘어갔는데, 외국에 사는 누나가 한번은 울면서 '너 진짜 그랬냐'며 전화를 걸어왔습니다. 이만기 형님도 그런 소문에 많이 휩쓸렸다고 합니다. "<br />
<br />
힘만 셀 것 같은 남자로 비치지만, 그는 한 세기가 저무는 1999년 12월 31일 '미래의 자녀들에게'라고 편지를 쓰는 감상(感傷)도 보인다. <br />
<br />
"그날 밤 술자리를 고사하고 집에 돌아와 생각에 잠겼어요. 내가 아버지, 어머니에 대해 무얼 알고 있나. 아버지는 20대에 무슨 야망을 갖고 있었을까.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. 이런 것이 궁금하더라고요. 아마도 내 2세도 그렇게 궁금해하지 않을까. <a class="gu_15_0b0bcd" href="http://search.daum.net/cgi-bin/nsp/search.cgi?w=tot&q=%B9%D0%B7%B9%B4%CF%BE%F6&nil_profile=newskwd&nil_id=v19500254" target="new"><font color="#0b0bcd">밀레니엄</font></a> 때 제일 중요한 시간을 나는 너한테 투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요. 내 아이가 생겨 사춘기를 거쳐 반항할 때쯤 보여주려고 합니다. 지금도 보관 중인 보물 1호입니다. "<br />
<br />
―진행자로서 어떤 출연자가 까다롭습니까?<br />
<br />
"숨기는 자가 우리 MC의 최대의 적입니다. 개인적으로 같이 일하는 후배 작가나 MC들에게 '출연자가 잘했느니 못 했느니 타박하지 마라. 그 재능을 안 보여주려는 출연자에게 그걸 끄집어내는 것이 MC의 몫이다'라고 말합니다. 재능을 숨기는 출연자를 만나면 정말 힘들고 부담스럽지요. 분명한 점은 주인은 불평할 수 없다는 겁니다. "<br />
<br />
―누군가가 "이 채널을 틀어도 강호동, 저 채널을 틀어도 강호동"이라고 했다는데, 온 사방에 나와서 본인이 진부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드나요?<br />
<br />
"이제는 방송사별로 프로그램 한 개씩만 합니다. 결코 많이 한 것은 아닌데. 정말로 우리에게는 마지막까지 사수해야 할 게 식상하다는 소리를 안 듣는 겁니다.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철학을 가지고, 막을 수 있을 만큼 다 막아야 하죠."<br />
<br />
―강호동씨에 대해 '사투리 억양 등 언어와 발음에 문제가 많은 진행자'라는 지적이 있던데. <br />
<br />
"그것 또한 최고의 콤플렉스죠. 정상적으로 말하면 강호동이 MC를 한다는 것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죠. 하지만 세월이 좋아져서, 그 사투리 톤을 오히려 더 상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거죠." <br />
<br />
―요즘 유행어로 '비호감'이라는 말도 좀 듣지요?<br />
<br />
"제가 기본적으로 호감 사이즈가 아니지 않습니까. 비 올 때 우산을 쓰지만 비를 한 방울도 안 맞을 수 있습니까? 안 맞고 싶으면 집을 안 나가야죠. 누군가를 만나봐야 하고 목적이 있어서 가야 하는데, 비가 와서 안 나간다면 그게 말이 됩니까? 우리한테는 우산이라는 무기가 있는데. 5000만 명이 다 고객인데."<br />
<br />
그는 방송 진행에서 그렇듯이 인터뷰 내내 소리를 지르다시피 했다. 이 때문에 '단순 무식', '미련 곰탱이'라는 이미지도 있다. 그건 전략일 뿐, 속아서는 안 된다. "어느 쪽이냐?"는 물음에, 그는 "우하하하, 선생님. 굳이 치자면 난 여우에 가깝죠"라고 했다. <br />
<br />
<br />
<strong>한때 이만기와 함께 합숙?“주량은 소주 2병”<br />
<br />
강호동은</strong></p><p>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니 식당 종업원들이 모두 몰려들어 기념촬영을 요구했다. 광화문 거리에서는 지나가는 차도 멈춰 서서 사인을 요구했다. 행인들마다 "강호동"이라며 핸드폰으로 찍어댔다. 그는 작년 말 'SBS 연예대상'을 받았다. KBS '1박2일', SBS '스타킹', MBC '무릎팍 도사'에서 메인 진행자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. 하지만 그는 "내 전성기는 지금이 아니라 앞날에 있다"고 했다. <br />
<br />
아버지의 권유로 중학교 2년 때부터 씨름을 위해 합숙생활을 했다. 당시 이만기 선수와 함께 지냈다. 1989년 프로씨름단 '<a class="gu_15_0b0bcd" href="http://search.daum.net/cgi-bin/nsp/search.cgi?w=tot&q=%C0%CF%BE%E7%BE%E0%C7%B0&nil_profile=newskwd&nil_id=v19500254" target="new"><font color="#0b0bcd">일양약품</font></a>' 프로전적 3승(승률 10% 미만)인 그가 280여승의 이만기(승률 9할)를 상대로 이겼고, 그의 시대가 열렸다. 하지만 1992년 '예상을 깬' 은퇴를 했다. 이듬해 방송계에 데뷔해, 현재 최고의 MC로 평가받고 있다. <br />
<br />
그는 "사람에 대해 관심이 가장 많다"며 "방송을 하면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처럼 비치지만 실제로는 깊이 만나는 사람이 드물고 관계 폭도 좁다"고 말했다. "사람 만나 궁금증을 푸는 기자직업을 했으면 잘 했을 것 같다"고도 했다. 또 그는 "소주 20병쯤 마실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병이 정량"이라고 했는데, 함께 마신 사람들은 그 앞에서 모두 쓰러진다고 주장했다. <br />
</p>
less.. <p>방송사 간부 후배에게 '압력'을 넣고, 그 후배는 강호동(38)에게 빌고 빌어, 넉 달 만에 성사된 인터뷰였다. 그러자 강호동은 "우하하하, 선생님"이라며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. <br />
<br />
"정 그렇다면 하긴 하겠는데, 나 같은 사람을 신문에서 크게 내도 됩니까"라고. 그는 아직 만나지도 않은 나를 먼저 웃기려고 하는 것이었다. 요즘 대통령을 인터뷰하기보다 더 어려운 게 스타 연예인이라고 한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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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를 일식집에서 만났을 때, 이 점부터 따졌다. <!-- 사진 Start --><table style="clear: both" align="center"><tbody><tr><td style="padding-bottom: 10px"><table width="480"><tbody><tr><td class="d_11_000000"><img alt="" src="http://photo-media.hanmail.net/200801/05/chosun/20080105130903.158.0.jpg" width="480" border="0"/><br />
<br style="line-height: 1px"/>지난 연말‘SBS 연예대상’을 받은 강호동씨가 광화문 한복판에 섰다. 방송 3사를 종횡무진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, 그는“내 전성기는 앞날에 있다”고 했다. /허영한 기자 younghan@chosun.com<br />
</td></tr><tr><td height="2"></td></tr></tbody></table><table width="480"><tbody><tr><td class="d_11_000000"><img alt="" src="http://photo-media.hanmail.net/200801/05/chosun/20080105130903.158.1.jpg" width="480" border="0"/><br />
<br style="line-height: 1px"/>허영한 기자 younghan@chosun.com<br />
</td></tr><tr><td height="2"></td></tr></tbody></table></td></tr></tbody></table><!-- 사진 End -->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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―"나 같은 사람이 신문에 나와도 됩니까"라고 겸사를 떨었는데, 가식적인 쇼인가요? 진심인가요?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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씨름 천하장사 출신에서 이제 최고 인기를 누리는 방송 진행자가 된 그는 눈길만 마주쳐도 "우하하하" 터뜨리던 웃음을 딱 멈추었다. <br />
<br />
"제가 인터뷰를 잘 안 하는데요, 선생님(이 단어는 그의 습관적 말투임). 왜냐하면 공개적으로 내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두렵고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. 방송에서는 촌놈 이미지인데, 내가 고급스럽게 나가는 것도 맞지 않고,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. 이게 겸손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. 또 누굴 만나도, 재미있어야 한다, 웃겨야 한다,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직업적 강박관념이 있습니다. 누구든 5000만 명(국민) 모두가 고객이니까 부담스럽지요. 방송 진행은 어떻게 하느냐고요? 그건 PD, 작가, 출연자 등 아군(我軍)끼리거든요. 제가 실수를 해도 잘 편집해주니, 편안한 입장인 거죠." <br />
<br />
―기자는 아군이 아니라는 거죠?<br />
<br />
"그게 아니라…, 독자들이 돈 내고 신문을 사보면서 내 생각을 읽고 싶을까요. 내 신념이라는 게 존경받을 만한 것도 없고. 제 생각은 늘 바뀌어왔거든요. '이게 맞다'고 생각을 했는데, 세월 지나면 저게 또 맞는 거 같아요. 글쎄, 저처럼 귀가 얇은 사람을 세상에 처음 봤습니다. 얼마 전 대선 토론 프로를 볼 때도, A의 얘기를 들으면 B가 나쁜 사람이에요. 그런데 B가 반박하는 걸 들으면, 그게 또 맞아요. 그런 내가 무슨 생각을 이야기한다는 게 굉장히 신경 쓰이는 거죠." <br />
<br />
</p><br />
―그럼에도 본인이 최고의 자리에 와있다는 것은 느끼고 있겠지요?<br />
<br />
"열아홉 살에 천하장사가 됐을 때, 내 인생에서 사십 대가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. 씨름이 10년, 방송이 15년이니 이제 배보다 배꼽이 훨씬 커져 버렸어요. 그런데 씨름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샅바 잡고 한두 달 정도 하다보면 옛날 가락이 나와요. 전성기 때보다 체력은 안 돼도, 후배들보다 보는 눈이 훨씬 높습니다. 그런데 방송에서는 아직 기초가 안 돼 있다는 거예요."<br />
<br />
―방송 생활 15년이면 기초를 운운할 단계는 지나지 않았습니까?<br />
<br />
"가령 이경규 선배님이나 유재석, 신동엽 씨 등은 어렸을 때부터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했지 않습니까. 학교도 그런 학교를 나왔고. 그 사람들은 타고난 기본 재능 아래 스스로 기획을 할 줄 알아요. 이들에게 '다음에 하고 싶은 작품이 뭐냐?'고 물으면, 벌써 구상하고 있을 겁니다. 나는 그게 안돼요. 씨름에서도 시작이 굉장히 중요합니다. 고등학교 때 씨름을 시작했다면,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웬만한 상위권의 선수들을 절대로 못 따라갑니다. 기초가 안 돼 있는 것, 결국 이게 제 한계가 아닌가. 그 사람들보다 더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. 내 머리가 나빠서 그렇다면 받아들이겠지만."<br />
<br />
―학교서 배웠다고 해봐야, 불과 2~4년 차이 아닌가요? <br />
<br />
"배움의 혜택을 못 받은 자격지심인지 모르겠지만. 해본 사람은 그렇게 말할지 모르나, 남들처럼 안 해본 사람에게는 늘 콤플렉스가 되는 거죠. 그래서 배울 게 없어 대학을 안 간다는 식으로 누가 말하면, 내게는 참 비겁한 변명처럼 들립니다. " <br />
<br />
천하장사 5번, 백두장사 7번을 차지한 그는 22세의 한창 나이에 씨름판을 은퇴했다. 학력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고 한다. "천하장사를 하는 동안 <a class="gu_15_0b0bcd" href="http://search.daum.net/cgi-bin/nsp/search.cgi?w=tot&q=%C0%CC%B8%B8%B1%E2&nil_profile=newskwd&nil_id=v19500254" target="new"><font color="#0b0bcd">이만기</font></a> 형님이 은퇴해 대학 강단에 섰습니다. 그걸 보면서, 실기(實技)로는 A+이지만 지식 없이 살아온 내 삶이 자꾸 걸렸죠. 이론을 겸비하려면 대학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. " 그는 '체육특기생'으로 진학하려고 했다. 하지만 특기생 혜택은 '졸업 후 3년 내', 이미 그 기간이 지난 뒤였다. <br />
<br />
―현장에서 배우는 것 자체가 기초지, 꼭 학교에서 배워야 기초가 되는 건가요?<br />
<br />
"씨름으로 보면 강호동은 굉장히 타고난 조건입니다. 당시 키 182cm, 몸무게 125kg, 아주 탄력 있고 허리가 좋았거든요.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을 훈련해야 하는 지 확실히 알고 있었지요. 하지만 방송에 와서는 방법을 모르겠어요. <br />
<br />
대본을 받아 들고, 하얀색 대본이 검은색 대본이 될 때까지 볼펜으로 줄 치면서 외웠습니다. 학교에 다닐 때도 안 해본 짓을 처음 한 것이지요. 눈앞에 깜깜한 벽이 서있는 것 같았습니다. 정말 고민 많이 했지요. 그런 고민이 결코 나쁘게만 작용한 것은 아닙니다. 저를 자만이나 방심에 빠지지 않게 만들었지요. 제 확실한 철학이 있다면 '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'가 아니라, '젊은이여 고민을 가져라'는 겁니다. 고민하고 밤새도록 더 고민하라고요."<br />
<br />
찻잔을 꿀꺽 비운 그는 슬그머니 방송 진행자로 돌아와 "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?"라며 질문을 하는 것이다. <br />
<br />
"'천재는 노력하는 자에게 못 이기고,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에게 못 이긴다'라는 참 좋은 말이 있는데, 저는 그 말을 안 믿었거든요. 노력하는 자보다 즐기는 자가 결국 최상위가 된다는 거죠. 한 분야에서 1등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즐기고 있는 걸까요? 선생님은 즐기는 인생이라고 생각하세요? 인터뷰 일을 즐깁니까?"<br />
<br />
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, "대답을 하세요. 답을 해야 인터뷰가 진행됩니다"라고 덤볐다. 결국 "힘들어 죽겠다"고 하자, 그는 "봐요, 선생님도 그렇잖아요"라며 깔깔거렸다. <br />
<br />
"즐기면서 능력을 발휘한다? 1년 365일 내내 어떻게 즐깁니까? 그건 정말 1%의 천재들 이야기이지요. 저는 서른 다섯 살까지 결코 그걸 못 믿었어요. 하지만 요즘에는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인지 '어쩌면 즐기는 자가 이길 수도 있겠구나'라는 생각이 가끔 들 때도 있지만요."<br />
<br />
―배운 것 없이 씨름판에서 살았는데, 어떻게 해서 방송에서 성공했지요? 그건 타고난 겁니까, 노력한 결과입니까?<br />
<br />
"과거에는 노력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 '특기'였지요. 요즘은 그건 특기 사항이 아닙니다. 일상에서 숨 쉬는 것처럼, 누구나 다 하는 '기본'입니다. 안 그렇습니까. 그런데 제가 정말 성공한 겁니까? 정말 그렇다면, 이는 내가 모르는 내 능력을 끄집어내 준 선배와 PD들이 있었던 것이죠. 나는 내 속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. 이분들은 뛰어난 감각으로 그걸 미리 봤던 겁니다. "<br />
<br />
씨름판에서 은퇴한 그가 대학 진학에도 막힌 뒤, 후배들에게 씨름을 가르쳐주며 쉴 때였다. 코미디언 이경규가 그를 불렀다. 그전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잠깐 마주쳤던 인연이 있었다. 이경규는 방송 데뷔를 권하면서 "만약 실패하면 나도 같이 옷을 벗겠다"고 했다. 그런 뒤 "저 친구의 다듬어지지 않은 면을 닦고 보면 빛이 날 텐데"라며 담당 PD에게 소개했다고 한다. <br />
<br />
"그렇게 해서 '소나기'라는 프로에 출연했던 겁니다. 못 배워 좋은 점은 '똥고집'이 없는 거죠. 제 의견이 없어요. 배우지 못한 자로서의 혜택인 거 같아요. 백지(白紙)를 내보이죠. '알아서 잘 칠해 주십시오'라고, 완전히 저 자신을 맡겨버립니다. 다른 진행자들은 얼마간 자기 고집과 색깔이 있으니, 완전 백지가 되기 어렵습니다. "<br />
<br />
<br />
<br />
―당시 방송 데뷔를 안 했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? <br />
<br />
"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. 그때 안 했어도 저는 방송을 했을 거 같아요. 운명적인 것을 믿어요. 제가 고민을 많이 하지만, 이를 이겨내는 신약(神藥)은 '운명론' 같아요. 잘되는 일이 있으면 이는 반드시 정해져 있는 거,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뭐 어차피 정해져 있는 거라는 식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합니다. 그런 게 나한테 왜 필요했느냐면…." <p>그는 불쑥 양다리를 들어 올려 바지를 걷었다. 왼쪽 정강이에 있는 지렁이 같은 흉터를 가리켰다. "120바늘 꿰맸습니다. 양쪽 다리 길이와 근육이 다르지요. 왼쪽 발목은 잘 움직이지도 않습니다"라고 했다. <br />
<br />
"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고 나면서 운명이라는 걸 믿게 됐어요. 고3 때 '전국통일장사'를 따 대학과 프로씨름단으로부터 <a class="gu_15_0b0bcd" href="http://search.daum.net/cgi-bin/nsp/search.cgi?w=tot&q=%BD%BA%C4%AB%BF%EC%C6%AE+%C1%A6%C0%C7&nil_profile=newskwd&nil_id=v19500254" target="new"><font color="#0b0bcd">스카우트 제의</font></a>가 쇄도했습니다. 즐거운 비명을 막 지르고 있을 때, 오토바이를 타다 치명적인 사고가 났어요. 다리가 거의 끊어질 뻔했거든요. 내 인생이 끝난 줄 알았어요. 그때 비로소 철이 들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. 섬세해졌고…."<br />
<br />
"발목 관절이 잘 움직이지 않는 이 다리로 나중에 천하장사를 했다"는 말을 할 때는, 그의 눈자위가 어둑해졌다. <br />
<br />
―방송에 뛰어들어서는 최악의 순간이 언제였지요? <br />
<br />
"초반에는 나한테 안 어울리는 옷을 억지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 많았습니다. 씨름을 하면서 그런 걸 다 경험했기 때문에…. 결국 방송은 씨름과 똑같습니다. "<br />
<br />
―어떤 상관관계가 있죠?<br />
<br />
"하나도 안 틀리고 똑같습니다. 씨름에서 가장 괴로운 때가 동계 훈련입니다. 그 고통은 달리 말로 표현이 안 됩니다. 씨름 시즌은 3월부터 10월까지인데, 동계 훈련의 효과는 3월에 즉각 나타나지 않습니다. 8월, 9월쯤 가야 효과가 나타납니다. 그 효과란 끝까지 버티는 정신력입니다. 방송 진행도 체력전입니다. 몇 시간씩 녹화 방송을 제작하기 때문에 지치면 안 됩니다. 내가 지치면 출연자가 지치고 출연자가 지치면 프로그램 진행이 안 됩니다. 씨름은 체력전, 방송 진행은 심리전으로 생각하기 쉽지만, 사실 방송 진행에 더 체력이 필요하지요. 하루 중 쉬는 시간이면 거의 체육관에서 삽니다. "<br />
<br />
―'<a class="gu_15_0b0bcd" href="http://search.daum.net/cgi-bin/nsp/search.cgi?w=tot&q=%B9%AB%B8%AD%C6%C5+%B5%B5%BB%E7&nil_profile=newskwd&nil_id=v19500254" target="new"><font color="#0b0bcd">무릎팍 도사</font></a>'가 출연자에게 '막가파' 식 질문을 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데. <br />
<br />
"결코 '막가파' 식은 아닙니다. 제가 볼 때는 질서가 있습니다. 공과 사는 반드시 구분합니다. 공인(公人)이다 보면 안 좋은 일도 있을 수 있는데, 그게 사적인 부분이라면 궁금해도 억제를 합니다. 공적인 부분이라면 그 사람 이미지에 좋지 않더라도 질문할 수 있는 거죠. 저로서는 놀라운 거 재미난 거 신나는 거를 끄집어내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, 한편으로는 보호해야 된다는 생각도 동시에 있지요."<br />
<br />
―그런 질문을 하겠습니다. 얼마 전까지 연예계 스캔들의 상대역으로 종종 등장했지요.<br />
<br />
"그런 소설이 재미있습니까. 씨름 선수 출신이니까 힘세고 정력 좋은 걸로만 연상이 되니…. 그냥 그런 줄 알고 넘어갔는데, 외국에 사는 누나가 한번은 울면서 '너 진짜 그랬냐'며 전화를 걸어왔습니다. 이만기 형님도 그런 소문에 많이 휩쓸렸다고 합니다. "<br />
<br />
힘만 셀 것 같은 남자로 비치지만, 그는 한 세기가 저무는 1999년 12월 31일 '미래의 자녀들에게'라고 편지를 쓰는 감상(感傷)도 보인다. <br />
<br />
"그날 밤 술자리를 고사하고 집에 돌아와 생각에 잠겼어요. 내가 아버지, 어머니에 대해 무얼 알고 있나. 아버지는 20대에 무슨 야망을 갖고 있었을까.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. 이런 것이 궁금하더라고요. 아마도 내 2세도 그렇게 궁금해하지 않을까. <a class="gu_15_0b0bcd" href="http://search.daum.net/cgi-bin/nsp/search.cgi?w=tot&q=%B9%D0%B7%B9%B4%CF%BE%F6&nil_profile=newskwd&nil_id=v19500254" target="new"><font color="#0b0bcd">밀레니엄</font></a> 때 제일 중요한 시간을 나는 너한테 투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요. 내 아이가 생겨 사춘기를 거쳐 반항할 때쯤 보여주려고 합니다. 지금도 보관 중인 보물 1호입니다. "<br />
<br />
―진행자로서 어떤 출연자가 까다롭습니까?<br />
<br />
"숨기는 자가 우리 MC의 최대의 적입니다. 개인적으로 같이 일하는 후배 작가나 MC들에게 '출연자가 잘했느니 못 했느니 타박하지 마라. 그 재능을 안 보여주려는 출연자에게 그걸 끄집어내는 것이 MC의 몫이다'라고 말합니다. 재능을 숨기는 출연자를 만나면 정말 힘들고 부담스럽지요. 분명한 점은 주인은 불평할 수 없다는 겁니다. "<br />
<br />
―누군가가 "이 채널을 틀어도 강호동, 저 채널을 틀어도 강호동"이라고 했다는데, 온 사방에 나와서 본인이 진부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드나요?<br />
<br />
"이제는 방송사별로 프로그램 한 개씩만 합니다. 결코 많이 한 것은 아닌데. 정말로 우리에게는 마지막까지 사수해야 할 게 식상하다는 소리를 안 듣는 겁니다.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철학을 가지고, 막을 수 있을 만큼 다 막아야 하죠."<br />
<br />
―강호동씨에 대해 '사투리 억양 등 언어와 발음에 문제가 많은 진행자'라는 지적이 있던데. <br />
<br />
"그것 또한 최고의 콤플렉스죠. 정상적으로 말하면 강호동이 MC를 한다는 것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죠. 하지만 세월이 좋아져서, 그 사투리 톤을 오히려 더 상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거죠." <br />
<br />
―요즘 유행어로 '비호감'이라는 말도 좀 듣지요?<br />
<br />
"제가 기본적으로 호감 사이즈가 아니지 않습니까. 비 올 때 우산을 쓰지만 비를 한 방울도 안 맞을 수 있습니까? 안 맞고 싶으면 집을 안 나가야죠. 누군가를 만나봐야 하고 목적이 있어서 가야 하는데, 비가 와서 안 나간다면 그게 말이 됩니까? 우리한테는 우산이라는 무기가 있는데. 5000만 명이 다 고객인데."<br />
<br />
그는 방송 진행에서 그렇듯이 인터뷰 내내 소리를 지르다시피 했다. 이 때문에 '단순 무식', '미련 곰탱이'라는 이미지도 있다. 그건 전략일 뿐, 속아서는 안 된다. "어느 쪽이냐?"는 물음에, 그는 "우하하하, 선생님. 굳이 치자면 난 여우에 가깝죠"라고 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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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strong>한때 이만기와 함께 합숙?“주량은 소주 2병”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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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호동은</strong></p><p>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니 식당 종업원들이 모두 몰려들어 기념촬영을 요구했다. 광화문 거리에서는 지나가는 차도 멈춰 서서 사인을 요구했다. 행인들마다 "강호동"이라며 핸드폰으로 찍어댔다. 그는 작년 말 'SBS 연예대상'을 받았다. KBS '1박2일', SBS '스타킹', MBC '무릎팍 도사'에서 메인 진행자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. 하지만 그는 "내 전성기는 지금이 아니라 앞날에 있다"고 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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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버지의 권유로 중학교 2년 때부터 씨름을 위해 합숙생활을 했다. 당시 이만기 선수와 함께 지냈다. 1989년 프로씨름단 '<a class="gu_15_0b0bcd" href="http://search.daum.net/cgi-bin/nsp/search.cgi?w=tot&q=%C0%CF%BE%E7%BE%E0%C7%B0&nil_profile=newskwd&nil_id=v19500254" target="new"><font color="#0b0bcd">일양약품</font></a>' 프로전적 3승(승률 10% 미만)인 그가 280여승의 이만기(승률 9할)를 상대로 이겼고, 그의 시대가 열렸다. 하지만 1992년 '예상을 깬' 은퇴를 했다. 이듬해 방송계에 데뷔해, 현재 최고의 MC로 평가받고 있다. <br />
<br />
그는 "사람에 대해 관심이 가장 많다"며 "방송을 하면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처럼 비치지만 실제로는 깊이 만나는 사람이 드물고 관계 폭도 좁다"고 말했다. "사람 만나 궁금증을 푸는 기자직업을 했으면 잘 했을 것 같다"고도 했다. 또 그는 "소주 20병쯤 마실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병이 정량"이라고 했는데, 함께 마신 사람들은 그 앞에서 모두 쓰러진다고 주장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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